"쉬웠다면 나에게까지 기회가 왔겠는가?" by spmint


성공, 승리를 곱씹고, 분석하고, 다시 무기로 벼리는 사람이야말로 아주 유능한 자일 게다.

전적과 크게 다를 것 없이, 스플렌더 네 게임 중 세 번을 이기고 나서 늦은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게임이 끝나고 나면 계속 그 게임에 대해 생각하던 남편은 내가 자꾸 이기는 이유가 궁금했고, 나는 내가 왜 이긴지도 모르면서 이런 저런 분석을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내가 게임 중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결정을 했는지를 설명했고, 나중에는 상대방이 내린 결정,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인상비평에도 못 미치는 이야기를 늘어놓게 됐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내뱉고 나서도 결국 모든 순간에 승리를 결정한 요인은 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한 성공이나 승리도 아니지만 긍정적인 결과를 사후적으로 평가하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그 성공에 대해서 평가하는 일이 얼마나 가볍고 쉽게 행해지는지를 생각하며 잠깐 등골이 서늘해졌다.

별로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별로 없는 인물이지만, 홍정욱 씨가 새로 낸 에세이 띠지에 적힌 문구가 다음 날 내 눈을 사로잡았다.

"쉬웠다면 나에게까지 기회가 왔겠는가?"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합당한 선물일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저 문구에서 가치를 찾겠지?



가정-반성 by spmint


지금 든 반성의 마음을 잊지 않고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 전에 써본다.

짧은 머리에 캐주얼한 옷차림을 한 여자는 레즈비언 일 것이고 외모에 무척 신경을 쓰고 여성스런 말투를 하는 남자는 게이일 거라는 추정을 아주 당연한 상식처럼 이야기하는, 선의로 가득한 사람들에게 나는 내가 모든 성소수자들의 대변자라도 된냥 알고 있는 것들을 자신만만하게 떠들어대고 말았다.

나는 언제 처음 스스로가 남성 혹은 여성이라고 인지했는지를 물으며 자신은 아주 최근까지도 스스로가 남성이라는 사실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본적이 없었다는 남자에게 그게 바로 당신이 다수고 힘을 가졌다는 증거라며 핏대를 세웠다.

하지만 결국 다수와 소수를 가르는 차별의 논리는 상대적인 것이라 그 역시 범주를 넓히면 유색인종이라는 소수자일 따름이다.

성적인 주제를 논하는 것 자체에서 죄의식을 느끼는 스무살짜리 여자아이에게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있었겠지만, 돌아보면 그 때의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게도 성은 즐거운 것이기 보단 불편하고 부끄럽고 심지어 죄악시되는 것이었다.

나는 우연히도 성소수자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여건에 처하게 되었고, 좀 더 성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문득 만일 내가 가진 성적 지향이 다수에 속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렇게 소리높여 그들에게 이야기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다수라는 안도감이 용기가 되고, 소수를 대변하는데서 오는 정의감이라는 상을 스스로에게 안길 수 있기 때문에 그렇기 떠들어댈 수 있었던 거다.

언제나 스스로 느끼는 옳다는 확신은 위험하다.



애덤 모턴, 변진경 역, 잔혹함에 대하여-악에 대한 성찰, 돌베개, 2015. by spmint


돌베개에서 나오기 시작한 "철학자의 돌"이라는 철학 교양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이다.

이 시리즈물은 루틀리지(routledge) 출판사의 Thinking in Action 시리즈의 번역본인 모양이다.

(루틀리지 출판사의 해당 시리즈 목록은 https://www.routledge.com/Thinking-in-Action/book-series/SE0001로)

루틀리지 출판사 본을 열어본 적이 없어 모르겠지만 출판사 웹사이트에서 게시하고 있는 표지 디자인으로 보아선 돌베개에서 출간한 연작의 외형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루틀리지 출판사본 시리즈의 표지 디자인은 주제와 관련된 비교적 단순하고 감각적인 사진 이미지를 전면에 크게 배치해 책의 이미지에 대해 즉각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으로 디자인 했다.

반대로 돌베개의 디자인은 그와는 상반되게 서술적이고 설명적인 전략을 택했다.

앞면 표지에는 중앙으로 정렬된 제목, 저자, 목차 전체가 장식 없이 배치되었다.

표지의 글자들은 모두 금속성을 띤 붉은 색으로 찍혀있지만 책의 주제인 "악"이라는 글자만은 색이 채워지지 않고 눌림으로만 표시되었다.

표지종이는 촉각적인 부분을 고려해서 코팅이 없는 종이를 선택한 것 같기도 하지만 쉽게 낡고 보푸라기가 생기는 골이 있는 종이는 보관이나 소장에 좋은 편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원래 출판사의 디자인 보다 주제 자체에 대한 강조가 적은 점은 아쉽다.

책은 250페이지 내외로 그리 두껍지 않고, 철학적인 주제임에도 대중문화나 근래의 사건을 예로 많이 들고 있어 진입장벽이 낮은 점이 장점이다. 사실 이런 장점은 루틀리지 출판사 본이 더 잘 살려주는 듯 하다.

이런 포인트를 드러내준다고 볼만한 부분은 저자가 책 내용 중간에 괄호를 친 문단을 만들어 동료 학자들에게 조언하는 부분이다.

인용하면:

(동료 철학자들에게 알림. 여러분은 명석함과 예리함을 마음먹은 만큼 보여줄 수 있다 해도 유용한 이미지와 단순한 이야기 구조, 매력적인 표지를 제공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을 바꿀 수 없을 겁니다.)


많은 다른 문제들에서처럼 부정확한 개념은 상황을 악화시킨다. 이 책은 분명히 존재하는 '악'에 대해 정확히 규정하고 어떻게 대면하는 것이 최적의 방법일지에 대한 고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행동이나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해라는 과정 자체에 상황 혹은 개념에 대한 자기 이입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그 행위에 이입시켜봐야 한다. 그런데 이 이입행위 자체를 부덕이라 여기기 때문에 애초에 구체적으로 나쁜 행위에 대해 이해하기를 포기해버리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도식은 나쁜 행동이나 악행이 자행되는 매커니즘과 공명하는 모순을 가진다.

대상에 대한 몰이해와 이입불가능성이 나쁜 행동/악행의 기재가 되기 때문이다. 대상이 나와는 전혀 다르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인식은 금기를 범할 좋은 핑계거리가 된다.

악인은 보통사람과는 다른 존재이므로 보통사람에게 적용되는 인권으로 존중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도 여기서 나오게 된다.

저자는 끊임없이 악인과 보통사람에겐 차이가 없으며 악행을 불러오는 것은 오히려 '상상력의 부재'라 주장한다. 참으로 옳다.

저자는 단순히 나쁜 행동 혹은 폭력과 악한 행위를 구분하려 시도한다. 모든 악행이 폭력성을 동반하진 않으며, 이 구분에서 중요한 점은 결과보다도 의도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책에서 짧게 언급하고 있는 영화/소설 시계태엽오렌지의 내용이다.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저자는 적절한 분노표출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면서 분노를 표출할 수 없는 상태는 오히려 폭력을 야기한다는 식으로 영화의 내용을 해석했던 것 같다.

폭력성의 '소거' 자체가 악을 소멸할 수는 없다는 걸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완전히 다른 얘기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캐주얼한 토론 중 신실한 기독교인인 성소수자가 자발적으로 호르몬제를 투여해 '잘못된' 성적 지향을 '치료'한 사례에 대해 듣게 되었다.

아마 동성을 좋아하지 않고 이성을 좋아하게 만드는 호르몬 따위가 있을 리 없으니 아마 성적 반응 자체를 차단하는 방식, 다시말해 화학적 거세와 비슷한 유형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동성애자에서 무성애자인 그/그녀는 결국은 다시 더 소수인 성소수자로 지위를 바꾸게 된 것이고 궁극적으로도 기독교 윤리에 썩 걸맞은 상태에 미치지는 못했을거란 생각이 든다.

결말이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는 없지만 결국 시계태엽오렌지 속 주인공의 선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길지 않은 이 책의 거의 대부분은 '악'이라는 개념이 가진 여러 면들을 쪼개어 살펴본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렇게 정의한 '악'과의 '화해'를 요청한다.

완벽하진 않지만 가장 이상적인 '악'과의 '화해'의 예로 남아공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사례를 소개한다.

아직도 수많은 화해들이 미뤄지고만 있고 매일 갈곳잃은 분노들이 달려들 새로운 악이 뉴스 속에 생산되는 때에- 읽어 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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